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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COVERSTORY] 마음껏 다르고 용감히 새로운팀, 라비던스 조회수 391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1-07-29 12:00:00
[COVERSTORY] 마음껏 다르고 용감히 새로운 팀, 라비던스
Club BALCONY 매거진101호 (2021년 7~9월호) 中
글/김호정 중앙일보 문화팀 기자


 
팬텀싱어의 스타, 라비던스가 몰고 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개성이 강한 연주자들이 모였지만 이들이 이뤄내는 화음은 그만큼 더 특별했다.
매번 예측을 벗어난 레퍼토리에 도전했지만, 그 모든 영역을 충분히 감당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라비던스만의 팀워크는 음악의 진심을 응원하고자 하는 팬덤을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있다.
이들의 매력, 한계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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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으로는 ‘가로지른다’는 뜻일 뿐인 ‘크로스오버’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작은 이미지들이 우리 안에 겹쳐져 만들었을 한 장면에는 우선 빈틈없이 차려입은 남성이 있다. 주로 검은색이고 조금 양보해봐도 무채색이다. 좁고 말쑥한 타이를 맨 남성은 4명이면 딱 좋다. 고음부터 저음까지 골고루 나뉜 기분 좋은 음색이 빈틈없이 꽉 찬다. 음악은 어디에선가 들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새로운 정도면 좋다. 이제 ‘크로스오버 콰르텟’의 완성이다.

JTBC가 2016년 시작한 <팬텀싱어>는 이런 그림에서 출발했다. 탄탄한 발성, 안정적인 기본기를 가진 네 남성의 소리를 조합해냈다. 시즌 1과 2에 고급스럽고 클래시컬한 팀들이 크로스오버의 이상을 충실하게 재연했다. 이탈리아의 가요, 올드 팝, 트렌디한 팝송이 귀를 만족시켰다. 시즌 2가 2017년 11월 끝나고 2020년 4월 시즌 3가 시작됐다. 크로스오버의 정수가 다시 한 번 전파를 탈 차례였다.
아니었다. 이번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세 시즌의 음악감독으로 선곡과 편곡 등을 담당했던 권태은의 말을 들어보자. “<팬텀싱어> 시즌 1, 2는 성공적이었다. 정통으로 가는 클래식 크로스오버 팀들이 ‘이 장르는 이런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의 ‘일 디보’를 선발해 정착시켰다.” 하지만 시즌 3는 예측과 달랐다. “음악이 확 바뀌어버렸다. 이제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계열로 갔다. 이스라엘, 쿠바, 그리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권태은 감독은 “그런데 이 변화를 팀 하나가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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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던스다. 청중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크로스오버에 대한 그림을 깨뜨린 팀. 팀원이 넷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의 크로스오버 4중창과 전혀 다르다. 멤버 구성부터 묘하다. 리더인 김바울은 성악가이고 최저음의 베이스다. 존 노는 테너로 피바디 음대, 줄리아드 음악원, 예일대 등 미국에서 주로 노래를 했고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가 잘 어울리는 미성이다. 황건하는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재학 중인 뮤지컬 배우. 마지막으로 고영열은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는데 건반을 기가 막히게 다룬다. 피아노와 함께 하는 판소리 가창은 청자의 시공간 감각을 기습적으로 무너뜨린다. ‘라비던스’는 ‘Rabid(광적)’와 ‘Guidance(안내)’를 합친 합성어로 ‘광적인 음악으로 안내하겠다’는 뜻이다. 기왕 소리를 맞추기 위해 만난 넷인데, 특징이 이토록 다르다. 이쯤 되면 권태은 감독의 말이 이해된다. “<팬텀싱어> 각 시즌 결승에 올라온 세 팀씩 9팀, 한 팀에 4명씩 꼭 36명을 만났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팀들인데, 가장 특이한 팀이 ‘라비던스’라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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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6월에 만난 라비던스는 녹음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달 넘게 매일 만나 연습, 녹음, 청취, 재녹음을 반복했다. 7월에 나오는 첫 정규 앨범을 위한 이 과정에서 스 스로 생각하던 팀 색깔이 더욱 확실해지는 중이었다.
“각자의 소리로 가도 맞춰질 거라고 생각한다.” 고영열이 특유의 허스키한 음성 으로 확고하게 말을 이어갔다. “녹음하면서 하나로 맞추려고 노래를 많이 해봤는데, 오히려 각자의 소리색으로 가는 게 제일 좋더라.” 옆에서 황건하가 거든다. “맞추려고, 안 맞추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는 거다. 그게 제일 우리답다.”
앨범의 타이틀은 <프리즘>이다. 여러 색으로 쪼개지는 빛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듯, 있는 그대로 빛나겠다는 뜻이다. “녹음을 앞두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전공이 다 다르고, 같은 성악 안에서도 결이 달랐다. 각자 톤이 너무 달라서 한 노래에서 어떻게 바통터치를 부드럽게 할 수 있을지 그게 고민이었다.”(고영열) 소리를 일치시키는 것만큼이나 모두의 독창성을 살리는 일도 고된 작업이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이들은 서로의 소리를 들어주고 의견을 내고, 다시 톤을 잡고 또 부르면서 팀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녹음하며 점검해보면 모두 다른 목소리가 우리의 가장 큰 특별함이다.”(김바울)
앨범 수록곡 7곡 중 4곡을 작곡한 권태은 감독은 넷의 색채를 정확히 알고 있다. 황건하는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이라고 했다. “하나하나의 목소리에 맞게 음악이 나왔다.” 권 감독은 “넷이 너무나 다르고 도무지 한 곡에 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일단 함께하면 희한할 만큼 듣기가 좋은, 그런 팀이다”라고 했다.
 

“이 노래를 한다고?”
라비던스는 <팬텀싱어> 시즌 3 경연에서 금기 없이 놀았다. 권태은은 “이 팀이 경연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야, 이 노래를 한다고?’라는 감탄이자 질문이었다”라고 전했다.
<팬텀싱어> 경연에서 라비던스는 ‘흥타령’으로 시작해 스티비 원더의 ‘어나더 스타(Another Star)’에서 라틴을 건드리고, ‘사랑한 후에’로 가요로 나갔다가 이스라엘 음악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로 히브리어 노래까지 경계 없이 멀리 나갔다. ‘몽금포 타령’은 한국 음악의 넓은 확장을 이뤘다. 이상은 4명이 함께한 노래다. 둘씩 부른 노래도 멀리 뻗어갔다. 존 노와 고영열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노래로 쿠바 음악에 닿았고, 고영열과 황건하는 ‘티파토스(이 격정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로 향했다. 급기야는 <팬텀싱어> 올스타전에서 <라이언 킹>의 노래 ‘그는 네 안에 있어(He lives in you)’로 아프리카까지 넘어갔다.
어디든 간다는 점이 라비던스의 특징이다. 이번 앨범에도 발라드, ‘상주 아리랑’ ‘몽금포 타령’, 그리고 릭 애슬리(Rick Astley)의 1980년대 노래 ‘Never Gonna Give You Up’이 들어간다. 여기에 권 감독이 새로 작곡한 ‘라비던스 맞춤 노래’ 4곡이 더해진다. 존 노는 “우리 넷이 다 다른 것만큼이나 7곡이 전부 다르다. 어떤 곡을 골라서 들어도 독특하다”고 했다. 그는 “한 노래 안에서도 비트를 바꿔서 쓴다. 도무지 심심하지는 않은 음반”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에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종횡무진이다. 라비던스는 무대 위 마이크 앞에 그대로 곧게 서서 노래하는 법도 없다. 이리저리 뛰고 신나게 놀면서 음악의 자유를 만끽한다. “최대한 다양한 걸 하면서 크로스오버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존 노는 앞으로 남은 장르에 대해 “아직도 많다”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편다. “<팬텀싱어> 경연 때 레게도 가지고 갔는데 안 했다. 아! 동요도 안 했다. 힙합도 안 했고. 아직도 남은 음악이 정말 많다.” 황건하 또한 “경연 때 이것저것 많이 불러봤는데 못 한 노래들이 있다”며 라비던스의 넓은 경험치를 상상하도록 했다.
안 해본 음악에 대한 호기심은 그대로 그들의 정체성이다. “라비던스 정서의 기본에는 장르를 파괴하고 넘어온 과정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다른 가수들도 외워서 부르면 할 수 있겠지만, 라비던스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권태은 감독) 무엇보다 멤버들은 오랜 시간 한 영역에서 노래해왔지만, 듣기만큼은 잡식성으로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명문 음대 출신의 존 노는 옛 팝송과 힙합 마니아고, 판소리를 하는 고영열은 피아노로 서양의 음계를 통달한데다 월드 뮤직에 대한 관심으로 ‘고영열과 세계 속으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앞으로 어떤 장르를 해도 어색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이런 과정을 거쳐 팬들을 안심시켰다. 권태은 감독 또한 이번 앨범에 들어간 ‘상주 아리랑’에서 꽹과리의 세마치장단과 피아노의 블루스를 병치하며 라비던스의 경계 허물기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금껏 너무나 새로웠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라는 반어적 우려를 섞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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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끝, 이제부터
멤버의 노래가 서로 다른 데에 만족하지 않고 음악마저 계속 변화시키는 이 팀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경연이 끝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움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팀의 장점은 경연 무대라는 형식이 사라지면서 폭발할 조짐이 있다.
스스로 뻗어나가는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압박 없이 노래할 수 있어서 좋다.”(황건하) “방송은 경쟁이어서 다른 팀을 의식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오로지 우리만의 시간이다.”(김바울) “방송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몰아붙이고 올려붙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섬세하게 드러난다. 예술성을 더해서 작품을 하고 싶다.”(고영열)
결론적으로 라비던스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은 역설적이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무한대로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희망적이다.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처음 보는 팀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멤버들의 시선은 이미 국경을 넘어가 있다. “이제 데뷔한 팀이다.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싶다”(고영열)면서도 “뉴욕 카네기홀 공연, 캘리포니아 코첼라 페스티벌 출연까지 꿈꾼다”(존 노)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연다. 존 노는 “전 세계에 없는 노래를 할 자신이 있다. 라비던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노래들이다. 외국 청중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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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묶여 있던 이들의 행보가 바빠진다. 라비던스는 6월 27일 디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시컬하게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데뷔했고, 8월엔 단독 콘서트를 연다. “경연에서 했던 노래, 신곡을 골고루 넣어 보여드릴 것”(황건하)이라고 했다.
라비던스는 멋있기보다는 재미있고, 정교하게 다듬기보다는 자유롭게 발산하며, 보편적이기보다는 희귀하고 특이하다. 우리가 예상했던 그림을 싹싹 지워버리고 패기 있게 무대에 올라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음악이 얼마나 많고 넓고 좋은지 모르겠냐며 자꾸 묻는 팀이다. 라비던스는 또 도전하고 실험하며 크게 헤엄치며 논다. 이들의 유영이 어디까지 뻗어갈까. 아마도 가까운 곳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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