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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ALCONY COLUMN]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조회수 117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0-11-16 15: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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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CONY COLUMN] 거슈윈의 '랩소디블루'에 대한
세 가지 질문
Club BALCONY 매거진 98호 (2020년 10~12월호) 中
글/황덕호
KBS 클래식FM 을 진행하고 있으며, 경희대학교에서 재즈 음악사와 대중음악사를 가르치고 있다. 재즈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쓰고 우리글로 옮겼다.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는 클래식 음악에서 ‘재즈’의 요소를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는 이 곡을 클래식 레퍼토리로 알고 있었고 클래식 레이블, 클래식 연주자들이 녹음한 앨범을 들어왔다. 이번에는 같은 곡의 재즈 밴드 버전에 대해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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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블루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었다.
여기 음반 한 장이 있다. 조지 거슈윈(1898~1937)의 ‘랩소디 인 블루’. 피아노 연주는 스테파노 볼라니,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2010년 녹음, 런던 데카가 발매했다.
여기서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해보자. 첫째, ‘랩소디 인 블루’란 무슨 뜻일까? 랩소디가 광시곡이라는 것은 손안에 검색 기능만 있으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인 블루(in Blue)’란 무엇일까? 푸른색 광시곡? 우울한 광시곡? 열쇠는 블루라는 단어가 재즈를 비롯한 흑인 음악에서 블루스(Blues)와 동의어로 종종 쓰인다는 점이다. 영어에서 조성 앞에 전치사는 in이 쓰이니, 이 제목의 뜻은 ‘블루스 조 혹은 블루스풍의 광시곡’이란 뜻이다. 대부분의 고전음악 제목들이-비록 일본을 거쳐 들어오기는 했지만–우리말로 정착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곡만은 그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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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음반의 랩소디 인 블루에는 다른 녹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표기 하나가 발견된다. ‘재즈 밴드 버전’. 이건 또 무엇일까? 이 두 번째 대답을 위해서는 이 곡의 연원을 좀 살펴야 할 것 같다. 랩소디 인 블루는 밴드 리더이자 지휘자였던 폴 화이트먼(1890~1967)이 거슈윈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당시에 화이트먼은 조금 독특한 편성의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일반적인 빅 밴드에 현악 파트가 더해진 오케스트라였다.
고향인 덴버의 교향악단과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던 화이트먼은 1차 세계 대전 때 해군 군악대를 이끌었고 전후에 댄스 밴드를 결성해 920년 빅터레코드에서 음반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새롭게 떠오르던 재즈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 음악이 추구하는 즉흥 연주가 너무 거칠고 상스러워 보다 격조 있는 음악회 무대에 올리기에는 부적합한 음악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공연 기획자 조지 화이트의 버라이어티 쇼 <스캔들>의 연주를 맡은 화이트먼은 이 쇼의 음악을 작곡한 거슈윈의 재능을 알아보고 재즈풍의 협주곡을 써줄 것을 의뢰한다. 그때가 192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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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때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은 재즈 밴드 버전
거슈윈은 그 의뢰에 즉각 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년 뒤 화이트먼이 주최한 음악회 ‘현대음악의 실험’의 신문 광고를 보고 이 음악회에 출품할 작품, 랩소디 인 블루를 3주 만에 완성했다. 거슈윈이 처음 탈고한 랩소디 인 블루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었는데, 아직 오케스트레이션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보를 받아본 화이트먼은 이 곡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편곡을 작곡가 퍼디 그로페(1892~1972)에게 부탁했고, 자연히 초연 때의 오케스트라 편곡은 폴 화이트먼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이었다. 그것이 바로 ‘재즈 밴드 버전’이다(여기서 예를 든 샤이 지휘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색소폰과 드럼을 사용해 화이트먼 오케스트라 편성을 재현했다). 이보다 훨씬 자주 연주되는 교향악단 버전은 초연으로부터 18년 뒤인 1942년(거슈윈 타계 5년 뒤), 역시 퍼디 그로페의 편곡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랩소디 인 블루는 재즈인가? 이 곡을 재즈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그리고 폴 화이트먼 오케스트라가 초연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정답은 재즈가 아니다.  재즈의 바탕인 블루스풍의 화성을 쓰고 재즈의 리듬을 사용하긴 했지만, 보다 중요한 재즈의 특성인 즉흥 연주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곡이다. 그래서 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99% 클래식 연주자들이다.
그럼에도 거슈윈과 화이트먼이 1924년 2월 24일 뉴욕 에어리언 홀에서 초연한 랩소디 인 블루는 미국 음악계 중심부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재즈풍’의 음악이었다. 화이트먼이 주최한 음악회 <현대음악의 실험>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등 음악계 명사들이 참관했는데(반면에 재즈 음악인은 단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다. 당시와 같은 인종 분리 시대에 흑인 음악가가 그곳에 갈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미국을 너무나 모르는 사람의 생각이다), 바로 10년 전 뉴올리언스의 홍등가 스토리빌에서 성행해,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시카고에서 조직 폭력배들의 이권 사업과 함께 성장한 재즈를 어느덧 그 흔적이나마 문화계의 중심지에서 선보이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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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즈는 음악회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날것’의 재즈는 결코 음악당에서 연주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폴 화이트먼은 랩소디 인 블루의 명성을 확실히 누렸다. 1927년부터 그는 빅스 바이더벡(1903~1931), 빙 크로스비(1903~1977)와 같은 본격적인 재즈 연주자, 가수들을 오케스트라에 기용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음악을 ‘심포닉 재즈’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재즈의 왕’이라고 불렀다.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에서 재즈의 왕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진짜’ 재즈는 결코 음악회 무대에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한 교향악단 비올라 연주자 출신의 지휘자가 재즈의 왕이 된 것이다.
세상에는 부조리한 일이 허다하므로 재즈 팬들이 새삼스레 이 일을 성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생각해야 할 점은 뉴올리언스에서 출발한 재즈가 미시시피강을 북상해 시카고에서 새로운 활기를 얻고 있는 동안, 미국 문화의 중심지 뉴욕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점이다.
유대인 혈통의 뉴요커 거슈윈은 그 무렵 어떻게 재즈를 접했으며 그 향료를 자신의 광시곡에 넣었을까?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재즈 하면 뉴욕을 떠올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최근에 벌어진 일일까?
의외로 재즈의 역사는 1920년대 뉴욕의 ‘진짜’ 재즈에 대해서 소홀히 다뤘던 면이 없지 않았다.
다음 회에는 거슈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뉴욕의 진짜 재즈맨의 이야기를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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